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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

모멸감

ayumu_ 2019. 2. 6. 14:03

"여씨춘추"는 죽음보다 더한 것이 생명이 억눌리는 것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굴복과 치욕은 인간의 존귀함이 무참하게 파괴되는 경험이다.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는 이분법은 다양하다. 나는 선하고 너는 악하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나는 똑똑하고 너는 멍청하다. 나는 유능하고 너는 무능하다. 나는 강하고 너는 악하다. 나는 예쁘고 너는 못 생겼다. 나는 깨끗하고 너는 더럽다. 이런 구분 속에서 스스로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고 상대방의 열등감을 자아낸다. 단편적인 잣대로 사람의 격을 나누고 자의적으로 가치를 매기는 속에서 모멸감을 주고 받는다.

그런 잔인한 행동이 나올 수 있는 배경에는 흉흉한 일상이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저마다 그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의 화약고를 가슴에 재워 넣고 있다가 신경질과 화풀이라는 총탄으로 연신 쏘아대는 사회에서 사람다움이 들어설 자리는 매우 비좁다. 타인의 인격을 부정하는 풍토는 결국 자신의 존엄성도 훼손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분노와 치욕감을 억누를 수 없을 때 선택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해와 남을 해치는 것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둘 다 타인과 세상에 대해 앙갚음하는 것이다.

내 눈에는 하찮은 것이라 해도 그 누군가에게는 목숨처럼 소중할 수 있다. 그런데 권력을 가진 자들은 오만에 사로잡혀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자기 방식대로 간단하게 상황을 해석하고 상대방의 심경을 외면한다.

모멸감을 불러일으키는 침해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간섭이다. 시선과 인터넷이 주로 모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면, 간섭은 아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상대방이 놓여있는 처지, 어쩔 수 없는 상황, 거기에서 겪는 일들과 그에 대한 느낌 등에 대해 무심한 채 피상적으로 판단하고 자기식대로 도움말을 주는 것은 모멸감을 자아내기 쉽다.

타인의 시선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상처와 아픔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그것으로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마음의 습관은 상대방을 그 굴레에 가두어 둔다. 그의 모든 성격과 행동을 트라우마와 결부시키면서 비정상의 부류에 묶어 버린다. 그 결과 연민의 눈길은 수치심을 자극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보는 자는 자신이 더 낫다는 우월감에 사로잡힌다. 일종의 권력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고객의 말을 정중하게 경청함으로써 감정을 가라앉히는 동시에 그의 주장이나 태도에서 어떤 점이 문제가 되는 지를 냉정하게 짚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일을 귀찮아하면서 책상만 지키고 앉아 있는 관리자는 그 모든 짐을 말단 직원에게 떠맡기면서 조직을 허약하게 만들 뿐이다. 의리 없는 상사, 합리성과 공정함을 결여한 회사를 위해 직원이 최선을 다하고 싶어 할 리가 만무하다. (+친절하되 결정적인 선을 넘으면 가차 없는 반격을 한다.)

우리의 눈은 낙인을 무시하고 정확히 인간적 측면에서 사람들을 보도록 훈련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모욕적으로 인간 이하의 측면에서 보게 되는 경우, 우리는 우리 눈을 믿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할 뿐 아니라, 상대를 인간 이하로 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 사비샤이 마갈릿 "품위있는 사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이나 느낌은 대부분 문화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일부러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마음의 회로가 있다.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인간 사회는 순조롭게 작동하지만, 그 질서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부당한 권력, 부조리한 제도, 일상 속에서의 차별과 억압 등은 그 의미체계를 통해서 지속된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면서 동시에 인간을 지배한다.

사람다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과 감각이 어떻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가를 종종 해부해보아야 한다. 널리 공유하는 상식의 문법과 행동의 원리를 파악해야 한다. 그 문화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지를 되묻고, 문제가 있는 부분은 수정해야 한다. 그 리모델링은 성찰에서 시작된다. 내가 무심코 반복하는 언행이 사회를 형성하는 과정의 일부라는 것. 타인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관행에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알아차리는 감수성이 요구된다.

공공일자리든 자원봉사든 참여하는 사람들이 환대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공무원들은 자신이 수립하고 운영하는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느낄지 충분하게 상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