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태풍 콩레이가 오기 전 날.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고 나는 늦게 일어났지.

어제 영화 <이토씨와 아버지>를 보느라 새벽 3시가 넘어서 잠들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랄까. 가족들끼리 투닥 투닥하는 영화를 봐서 인지, 꿈도 이름도 잘 기억 안나는 유년시절 동창과 싸우는 꿈을 꿨다. 원래는 영등포에서 하는 정원 박람회를 가보고 싶었는데, 이런 날 가는 건 정말 내키지 않아서. 오늘은 어디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있기로 했다.

영화 <힘내세요, 병헌씨>를 보며 일본 라면을 끓여 먹었다. 일본 라면은 맛이 밍밍하구, 느끼해서 별로였다. 그래도 맛있다 맛있다 최면을 걸면서 라면을 먹고 영화를 봤다. <힘내세요, 병헌씨>는 다행히도 재밌다 재밌다 최면을 걸지 않아도 재미있는 영화였다. 감독 이병헌씨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페이크 다큐 형식의 영화. 그리고 예전 남자친구가 좋아했던 영화이기도 했다. 나한테도 몇 번 말해서 한 번 봐야겠다했는 데 이제서야 봤네. 그 아이가 찍었던 영상 중 하나가 페이크 다큐형식이었는 데, 아마 이 영화를 재밌게 보고 차용한 것 같기도..페이크 다큐가 재미있게 찍기가 쉽지 않은 데 순간 순간 픽픽 터지는 데도 있구, 입봉이 간절한 신인 감독의 현실감도 있어서 좋았다. 어떤 직업이 그러지 않겠냐마는 영화감독은 특히 인내심은 필수 인 것 같다.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지리멸렬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를 찍기 위한 모든 과정을 버티고, 스탭들의 피땀눈물이 들어갔다는 고마움과 부담, 한 방을 보여 줘야 한다는 중압감을 견디고..어후..나는 절대, 못 해. 

여전히 별로인 영화를 보는 건 싫고 시간도 아깝지만, 별로인 영화를 봤다고 해서 쉽사리 욕을 하지는 못 하겠다. 졸작을 만들고 싶은 감독은 없고, 그 졸작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 졌는 지 알기 때문에. 예전 남자친구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했는 데. 시간이 걸려서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는 데.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 지, 궁금해졌다. 암튼 그 친구에게도 본인이 원하는 것을 실현하는 행운이 오기를 바라게 되었네. 

영화를 보고 나서는, 뭔가 미뤘던 것을 해야 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첫째는 고무장갑이 없어서 못 했던 화장실 청소, 둘째는 물 안에 허브랑 레몬 넣어보기 셋째는 선물받은 레몬청을 먹기위해 탄산수 사오기 넷째는 맥주 채워 넣기였다. 여기에 면접 준비는 .... 없었네 ㅋㅋㅋㅋㅋㅋ 옷 대충 입고 세수도 안 하고 가까운 마트로 가 쇼핑을 했다. 정말 자중에 자중을 했는 데 들고 간 가방에 물품이 꽉차서 놀랐다....집에 돌아와 내가 사랑하는 박막례 할머니 영상 틀어두고 할머니의 구수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화장실 청소를 했다. 락스로 샥샥 닦아서 물을 뿌리고 뽀득뽀득해진 화장실을 보는 건 언제나 기분이 좋다. 코도 좋은 우리 엄마는 일에서 돌아와 화장실 청소했어?라며 좋아했다. 뿌듯뿌듯. 

요즘 네이버 아울렛에 중독되서 할인하는 물품을 빠르게 픽하고 겟챠!하는 것에 빠져있는 데. 오늘은 밤 늦게 물품이 두개나 도착했다. 하나는 결혼식장에서 입을 나이스클랍 모직 원피스와 비디케이 가죽 펌프스! 둘 다 마음에 쏙 들어서 오 밤중에 패션쇼를 다 했다. 아직도 택배 올 것들이 남아있다는 것이 나를 설레게 해. 무쟝 무쟝!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래도 가계부를 써서 요즘 쇼핑중독에 제동을 걸어야 할 타이밍인 것 같다. 이러면서 니트, 쥬얼리 한번 더 보고..미쳐 버리겠다. 

한창 패션쇼를 마치고 원피스는 옷장에 구두는 상자에 고히 모셔놨는 데, 아나무한테 전화가 왔다. 귀신 같은 타이밍. 오빠랑 전화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넉살도 좋고, 눈치도 좋은 오빠. 센스가 좋은 편이어서 언제나 나를 유쾌하게 웃게 하지. 오빠의 넘치는 마음에 항상 고맙다. 오빠랑 함께 있을 때면 늘 여유로운 마음과 안정을 찾는 나도 좋고. 고마워 우리 아나무!

'떠도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와 층간소음 미쳤네?   (1) 2018.10.12
구월과 시월 좋았던 순간들  (0) 2018.10.09
감정일기 : 2018 09 27  (0) 2018.09.27
감정일기 : 2018 09 26  (0) 2018.09.27
감정일기 : 2018 09 25  (0) 2018.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