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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말은 곧 도서관은 누구나 참여하는 공간이란 사실을 의미한다. 참여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을 텐데 작가이자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나 뮤지션 엘비스 코스텔로 같은 명사는 뉴욕 공립 도서관이 주최한 강연에 ‘참여’하고 이들의 강연이 궁금한 이들은 청중으로 ‘참여’한다. 이 청중 중 누군가는 강연을 듣고 지적 대화를 위한 더 넓고 깊은 정보를 얻으려고 뉴욕 공립 도서관의 분점을 찾아 도서를 검색하거나 영상물을 대여함으로써 또 다른 형태로 ‘참여’를 경험할 것이다. 이를 위해 뉴욕 공립 도서관의 3,150명의 스태프 중 일부는 여러 종류의 자료를 찾아 이를 분류하고 배치하는 작업으로 ‘참여’의 역사를 쌓을 것이다. 또 없나?

영화는 이 과정을 평행하게 나열, 민주주의의 편집으로 프레드릭 와이즈먼 감독이 언급한 뉴욕 공립 도서관의 민주주의에 ‘참여‘하는가 하면 중간마다 도서관 운영자들의 회의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운영자들의 의견은 다양해도 하나로 모이는 결론은 뉴욕 공립 도서관의 모든 정보에서 소외된 이가 없도록 더 세심하게 정책을 짜는 것이다. 앞을 보지 못하고,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점자ㆍ음성 도서관의 예산을 늘리기 위한 계획을 짜는 한편으로 뉴욕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컴퓨터를 갖지 못해 디지털 정보에서 소외된 이들을 ‘참여’시킬 방안에 관해서도 고민한다. 그 시간, 뉴욕 공립 도서관 마당의 볕 좋은 벤치에는 노숙자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잠을 청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통’은 단순히 말하고 듣는 것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미국 독립 선언문처럼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할 수도 있고 흑인 노예제도의 부당함을 알리는 시위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을 것이며 도서관을 이용하는 이들을 위해 뉴욕 공립 도서관의 공공 근로를 통해 봉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에 참여하고 역사를 누리고 등등 역사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프레드릭 와이즈먼은 이를 도서관에서 목격하며 민주주의라고 정의했다. 프리모 레비의 말을 빌리자면, “과정을 경시하지 마라. 만드는 과정이 우리를 정의한다.” 즉, 민주주의는 ‘참여’라는 과정이 쌓은 역사다. 그리고 그 역사는 바로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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